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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머니 가장 깊숙한 곳

연차를 낸 어느날 써 내려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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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공개가 될 지, 비공개 글로 남을 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고 덤덤하게 글을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지난 밤 고열과 오한을 느껴 새벽 세 시에 깨어난 뒤로 잠을 설쳤다. 코로나 인걸까?

 

코로나가 확실하다. 한참을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코로나 증상을 서치하다가 새벽 여섯 시가 넘어 다시 잠이 든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떠 생각했다. 회사에 가도 되는걸 까?

내 옆자리에 앉아 일하는 상사의 결혼식이 내일인데,,, 나 때문에 결혼식과 신혼여행을 망치면 어떡하지?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멤돌았다. 아직 몸살기운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오늘 회사를 가는 것은 역시 무리인 것 같다는 판단이 들고, 플렉스를 열어 연차를 신청했다.

 

 

뜻밖의 연차다.

 

새 회사에 입사한지 갓 2달을 채워가는 나는 사실 연차가 없다. 한달의 80% 근무일을 채우면 받는 월차가 내가 평일에 쉴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인 방법이다. 아끼고 아껴 꼭 쓰고 싶은 날에 사용하고 싶었건만. 계획적인 삶을 좋아하는 내게 변수가 생겼다. 그 변수가 오늘 블로그에 이런 글을 써내려갈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나는 항상 압박감 속에 살아 왔다. 항상 나 자신을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누가 나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이다. 이런 압박감 속에 살아가는 나는 항상 부족한 사람이 되었다. 아직 개발을 잘 못하는 사람, 아직 리더쉽이 모자란 사람, 아직 실력이 부족한 사람, 아직 기본기가 부족한 사람, 자신감이 없는 사람, 항상 누군가의 그림자 밑에 숨어 있는 사람. 나는 나 자신을 항상 이렇게 정의하고 살았다. 이런 정의는 내가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와 컴퓨터를 켜 공부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뜻밖의 휴식 시간으로 생각할 기회가 주어진 오늘. 이런 부정적인 정의를 바꿔보고 싶다.

 

 

나는 왜 일을 할까? 왜 회사에 다닐까?

 

유치원을 졸업하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고등학교에 졸업하면 대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직장에 들어간 것은 지난 나의 20여년 생활에 비추어오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학교를 졸업했으니 직장에 입학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나에게 다달이 돈을 주고, 다달이 스트레스를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는 또 한가지가 있었다. 바로 성취감. 회사에서 칭찬 받는 일이 기분이 좋았다. 그게 아주 작은 일이어도 칭찬을 받았을 때 내가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내 몸이 쉴 곳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일을 멈출 수 없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이유는 먹고 살기 위함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직장생활이 멈출 수 없는 기차에 탄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늘은 그 기차가 하루 정도, 속도를 느리게 달리는 날이다.

창밖을 더 유심히 봐보자.

 

 

나는 왜 개발자를 택했나?

 

개발 일을 시작한지는 2년 4개월이 되었다. 개발자가 되기 위해 준비하던 시절을 떠올려 보면 나에게 너무나 가혹했다. 새벽 네시에 일어나 공부를 하고 다시 쪽잠을 자고 회사에 출근했다. 퇴근 후에도 공부는 계속되었다. 주말에도 역시 공부의 연속이었다. 전직을 하게 된 큰 이유는 돈과 지적 허영심이었던 것 같다. 회사로 날아오는 스팸 메일중에 개발자의 연봉 테이블이 있었다. 나랑 관계있는 직군의 연봉을 알고 나니 아주 조금씩 관심이 스며들었다.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해 유투브를 통해 알게 될 수록 마음속이 웅장해졌다. 뭐랄까. 저런 직업이 덕업일치를 이루어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퇴근 후에도 항상 공부하는 직업이라니. 그걸 또 회사에서 써먹고. 멋진 삶 같았다. 나는 학원을 등록했다.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것이지? 이 두려움은 언제 시작되었지?

 

이 글의 목적지에 도달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다. 나는 항상 두려웠다. 아니 지금도 두렵다. 개발자 공부를 시작하고, 개발자로 첫 면접을 보고 두번째 회사에 다니고 있는 지금 나는 항상 두려움 속에 살아왔다. 세상에 너무나도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아버렸다. 내가 모르는 것을 저들은 이미 다 알고 있고, 새로운 기술들이 너무나 많고, 나는 이제 배워가는데 트렌드는 바뀌었다고 하고. 나는 CS지식이 없는데, 나는 깃도 자유 자재로 다룰 수 없는데, 나는 JS지식도 깊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그 프레임웍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하는 것일까? 

내 밑천이 회사에 들어나면 어떡하지? 면접때 나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닐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것일까? 회사에서 항상 두려움에 떨었다. 퇴근하고 오면 지쳤고, 공부를 한 날보다 공부를 하지 않는 날들이 늘어갔다. 두려움은 점점 누적되어서, 나와 일상을 함께하였고 부정적인 생각들은 틈이 날때마다 내 머릿속을 비집고 돌아다녔다. 

'나는 뭘 하든 중간 이상은 하는 사람이지'라는 마인드로 살아왔기 때문에 취업만 하면 개발 일도 잘 할줄 알았다. 그게 아니었다 보다.

 

 

깨달음

 

나는 뭘 하든 중간 이상은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정도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레벨의 일만 항상 해왔던 것이다. 개발은 다르다. 인정하자. 나는 이번에 어려운 과제를 만난 것이다. 개발은 내가 인생을 살면서 해왔던 것들보다 어려운 레벨이다. 이전에 해왔던 것처럼 하면 안된다는 뜻이다. 내 안의 치졸한 두려움들을 없애는 방법은 딱 하나다. 치졸한 두려움들을 밖으로 꺼내서 해결하는 것. 

 

퇴근하고 집에와서 공부를 해야하는 이유는,

 

먹고 살려고,

쪽팔리기 싫어서,

이유는 모르겠는데 안하면 불안해서

이런 부정적인 마인드를 바꿔보자.

 

이제 부터는 이렇게 하자,

 

내가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 하자.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모르는 걸 아는 척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자.

모르는 것을 인정했다면, 모르는 것에 부끄러움이 느껴졌다면 그때 그때 해결하자.

모를 수 있다. 하지만, 모르는 것을 누적하지 말자.

 

 

마무리

 

내가 개발일을 시작했던 목적 중 돈은 어느정도 잘 따라오고 있는 것 같다. 지적 허영심을 이제는 지적인 삶으로 바꿔줘야할 때다. 내 일에 진정성을 가지고, 진심을 다해 지식을 쌓는 것. 나는 더이상 유투브로 넘어다 보는 개발자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바랬던 그 개발자가 되었고 이제는 내가 부러워 했던 그 삶을 좀 더 재미있게 살아보자.

 

글을 쓰다보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오늘의 주제를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절제하려고 노력했다. 또 이런 글을 토해낼 수 있는 시간이 나면 좋겠다. 리액트를 개발한 페이스북의 한 개발자가 올린 글이 있다. 거기에는 자신은 대단한 사람이 아니며, 자신은 모든 개발 기술을 알고 있지도 않다며 자신이 모르는 기술들을 열거 했다.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개발자라면 대단할 것 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고백했다. 모두를 위한 용기있는 고백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글을 읽고 잠시나마 두려움을 치유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나도 이 글을 공개할까 한다. 누군가에겐 공감과 위로가 되는 글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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